간암 전이 증상과 연명치료 를 중단한 경험
연명치료 거부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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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오랜만에(아니 거의 1년 만에), 가족으로써 겪은 간암 전이 증상과 연명치료 를 중단한 경험에 대해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그동안 새로운 식구(강아지)를 들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직한 직장에 적응하느라
정신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는데,
이제 다시 꾸준히 글을 써보려고 한다.
목 차
(사진은 구글 SEO의 압박으로 몇 장 넣음,
간암 전이 증상과 연명치료 를 중단한 경험)
우선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간암 전이 증상’에 대해서다.
(물론 사람마다 전이되는 부위가 달라서 증상이 다르겠지만)
혹시나 나처럼 가족이 ‘아무래도 간암이 전이된 것 같은데?’ 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확신은 없는 상황에서
혹여나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경우라면..
그래서 간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는 거라면..
조금이라도 참고할 수 있도록 연명치료에 대해 쓰기 전,
내가 겪은 아버지의 간암 전이 증상에 대해
작성해보고자 한다.
1. 간암 전이 증상 언제, 어떻게 왔는가?
아버지는 평소 건강검진을 소홀히 한 탓에 60대 중반 나이에 간암을 상당히 늦게 발견한 편이었다.
(아버지는 모태 비형간염 보균자로 간암이 걸린 케이스다)
병원은 아산병원, 국립암센터, 삼성병원 등 3군데 정도 돌아다니면서 진단을 받았고, 세 군데 모두 간암은 확진을 하였으며 국립암센터와 아산에서는 간 이식을, 삼성병원에서는 암덩어리가 있는 부분을 절제하자고 권했었다. 당시 간을 이식할 사정은 되지 않았고, 아버지는 평소 어디 식당을 가도 직원이 친절하거나 그런 것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삼성병원 의사는 불친절해도 너무 불친절하다며(무슨 절제술을 이야기할 때 가축을 도살하듯 표현했다고 했다) 삼성병원에서는 절대로 치료를 하기 싫다고 하셨고, 마침 같은 고향 사람이 간암 관련해서 의사로 재직하고 있는 아산병원에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아산병원에서는 처음엔 간 이식을 권유했으나, 당장 간 이식은 힘든 상황임을 알고 나서 부터는 ‘허셉틴’ 시술을 권했다. 아버지는 최초에는 허셉틴 시술을 하였고, 큰 혹이 사라져 생각보다 이후 경과는 굉장히 좋은 편이어서 나는 이렇게 아버지가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꾸준히 추적검진을 하다보니 암 세포들이 임파선과 같은 다른 곳에 붙어있다는 게 아닌가? 그때 마침 아버지는 아산에서 간암 환자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임상 실험 대상자로 선정됐다. 아버지는 그렇게 임상 실험 약물을 투여했고, 임파선에 붙은 암세포들은 작아지거나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등 당시에는 임상 경과도 매우 좋아서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의 콩팥이 더는 독한 항암 약물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을 때 발생했다.
아버지는 허셉틴 후 임상 등 항암 치료로 인해 혓바닥, 피부가 갈라졌고, 눈에 띄게 사람이 수척해졌고, 당연히 소화기관도 약해졌다.
사람이 수척해진 건 치료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고, 아버지가 삶의 의지가 워낙 강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항암을 못 할 정도로 본인의 콩팥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자식인 나한테 숨겼다…
아빠가 신장 기능이 약해져서 더 이상 항암치료도 불가하다는 사실을 내가 알았다면,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판단할 수 있었을텐데, 아빠는 ‘이제 항암 치료는 안 해도 된대’ 라는 말을 하며 거짓말을 했다. 난 결혼해서 아빠랑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빠가 해주는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아빠 옆엔 엄마도 없었다…ㅠㅠ) 주치의에게 들은 말이 아니라면, 환자 당사자가 하는 말은 가족이라도 전부 믿으면 안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진통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허리 고통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왔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콩팥이 제 기능을 못해서 항암 치료를 중단한 순간, 임파선 등에 붙어있던 암 세포들이 전이를 시작해서 허리 고통이 시작됐던 것 같다. 그래서 허리가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극심하게 아프다면 전이를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
당시 아산병원에서는 ‘뼈 스캔’을 해보자고 해서, 뼈 스캔을 했는데 뼈에는 전이가 된 게 나오지가 않아서.. 아빠는 또 ‘뼈 스캔에 이상이 없으니까 괜찮은거야’ 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뼈 스캔은 2023년 12월에 했고, 아빠는 야속하게도 작년 내 생일날인 3월 26일에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4월 7일에 돌아가셨다. 그 사이 아빠는 몰핀을 맞아야 견딜 정도로 극심한 허리 고통에 시달렸고, 몰핀 부작용에도 시달렸다(몰핀은 맞으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서랍을 뒤지는 등 사람이 거의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몰핀 맞는 사이 정신이 멀쩡할 때도 아빠는 ‘허리고통만 잡으면 괜찮아. 전이는 뼈 스캔도 이상 없었잖아’ 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고, 전이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이때가 아빠랑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 난 또 아빠가 잘 견딘다고 생각해서 회사에 출근을 하고 일상생활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빠가 CT 등을 통해 전이 여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었던 이유는, 조영제를 투여 못할 정도로 콩팥이 망가졌기 때문이었다.(당시에는 나에게 몰핀 부작용으로 호흡이 힘들어 가만히 누워있는게 힘들어서라고 했었다)
당시 몰핀을 맞을때 아빠는 2차 요양병원에 있었는데, 2차 병원 의사는 ‘전이여부는 알 수 없다’고만 이야기하고, 아빠는 또 괜찮다고 하니까 또 ‘뼈 스캔에서 이상이 없었으니 전이는 아닌가보다’ 하고 판단한 나는 아산병원가서 주치의를 만나지 않았다. 이게 내 최대의 실수였다.
2차 병원을 자진해서 퇴원해버린 아빠는 집에서도 몰핀을 맞으며 얼마 안 가 호흡 곤란이 왔고(역시 몰핀 부작용이다), 의식불명이 되었고, 그렇게 중환자실로 가서 연명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간암 전이 증상은 일부라도 전이 증상이 확인이 됐는데, 콩팥이 망가져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때 확 찾아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3가지다.
1. 환자 당사자가 아닌 ‘주치의’의 말만 믿어라.
2. 항암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 왜 중단하는 건지 중단 사유에 대해 명확히 확인할 것.
(예후가 좋아 치료를 더 할 필요가 없는 경우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3. 희망적으로는 생각하되, 안일하게는 생각하지 말 것
2. 연명치료를 중단한 경험
(간암 전이 증상과 연명치료 를 중단한 경험)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연명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명치료는 당시 혼수 상태로 입원한 주거지 근처인 고대 안암병원에서 하게 됐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의식이 뚜렷하지 않고, 호흡 곤란 증상이 있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건지 실제로 중환자실에 면회를 가기 전까지 잘 알지 못했고, 오빠의 동의 하에 기도삽관을 한다고 했을 때도(보호자가 오빠로 지정되어 있었다), 호흡곤란이 와서 하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도삽관’은 알고보니 연명치료의 일환이었고, 의료 기술로 우리 아빠의 호흡, 맥박, 혈압을 강제로 유지시켜 놓는 것에 불과했다. 중환자실 면회갔을 때, 아빠의 피부는 이미 차가웠다. 피부가 너무 차디차고, 몸은 띵띵 부어있었고, 신장은 투석기를 계속 돌리고 있었다. 그때 신장 투석기도 처음 봤는데, 무슨 트랜스포머 로봇같이 크고 기괴한 느낌이 드는 게 무서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나랑 이야기하던 아빠가 투석기와 기도삽관, 약물을 통해 살아날 가망이 없는 데 생명만 연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무섭고 토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오늘, 내일 한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으며, 나는 오빠에게 이제 다음 연명치료는 하지 말고, 이 의미없는 연장을 끝내고 아빠가 가는 경우에는 보내주자고 했다.
병원은 당연히 생명을 살리는 곳이다.
그런데 살아날 가망이 없는 사람의 생명만 연장시키는 행위가, 이건 산 사람의 욕심이지 이게 맞는 건지 싶었다. 극단적으로 가족을 보내지 못하는 유가족의 심정을 이용하는 병원의 장사 수단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중환자실 입원비도 장난이 아니다. 실비 혜택을 못받는 경우도 있어서.. 살아있는 가족의 현실적인 경제적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거나, 아빠가 정말 살아돌아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돈이 뭐라고. 나도 절대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명치료는 양쪽에게 다 괴로운 일이었고, 중단하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심정지가 올 경우, 후속 조치로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기로 병원에 의사를 전달하고, 심정지가 온 날. 우리는 그렇게 아빠를 보냈다.
생전에 본인이 연명치료를 원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명한 것이 아닌 이상, 남은 가족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절대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며, 사랑하지 않아서 하는 결정도 절대 아닌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도 단 한번이라도 살아있는 아빠를 안아볼 수 있다면, 이야기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매일매일 생각한다.
다음달이면 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이 된다.
1년이 다되가서는 지금에서야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게 되었다.
3. 연명치료 거부방법(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간암 전이 증상과 연명치료 를 중단한 경험)
그래서 나는 연명치료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남편에게도 미리 말해두었는데, 혹시 생전에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검색해보니 장기 기증 신청을 해두는 것과 같이, 아래 절차를 통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해 생전에 연명의료 거부를 신청해둘 수 있다.
1) 등록기관 방문
가까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신분증’을 지참해서 방문한다.
등록기관 목록은 아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가능기관 조회 : 작성 가능 기관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2) 상담 및 작성
등록기관에서 전문 상담자와 함께 연명의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
(이 과정은 무료로 진행)
3)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및 보관
작성된 의향서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되어 필요 시 의료진이 확인할 수 있도록 관리된다고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등록기관을 다시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 연명의료 결정제도 관련 페이지 : 연명의료결정제도 < 생명윤리정책 < 공공보건 < 정책 : 힘이 되는 평생 친구, 보건복지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검색해보니, 우리 동네는 ‘보건소’에서도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후 아직 못다한 아버지 통장과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건소를 방문해서 미리 의향서를 작성해두어야겠다.
혹시나 연명치료 중단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만 포스팅을 마친다. 👏